쉬인걸 컨설턴트

 


평점 : 10/10점(명저)

난이도 : 보통 / 255p


당분간 경제 분야에서 이 책과 비견될 수 있는 책은 나오기 힘들 것 같다. 물론 내게 있어 10점 만점인 경제 책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 책만이 가진 몇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감히 다른 책들이 대체하기 힘든 특징들이다. 긴 서평이지만 책 내용을 자세히 밝히는 것은 최대한 자제했다. 내용은 책을 사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그럼 이 책만이 가진 특징들을 하나씩 알아보자.


 


1) 철저히 ‘한국형’!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국내 저자의 수준이 번역서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는 분야가 ‘경제’이다. 주변에 ‘경제’에 관해 한소리씩 하는 전문가들이 즐비한데 괜찮은 대중서적을 보기 힘들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이를 대중의 무지함으로만 치부할 것인가? 전문가님들,  제발 대중서적 좀 쓰자. 물론 실제 책을 써보면 욕하는 것보다 몇 십배 더 힘들다는 것을 경험하겠지만.


이런 나의 갈증을 해결해 준 책이 나타났다. <환율의 미래>. 고맙고도 참 고마운 책이다. 경제 & 투자 분야의 번역서들이 갖고 있는 한계점은 무엇일까? 바로 ‘한국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라마다 각자 독특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외국의 상황을 국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하지만 훌륭한 한국형 경제, 투자 대중서는 앞서 말했듯이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실제 대중서적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의 유일한 저자가 홍춘욱 박사이다. 홍춘욱 박사는 자신의 전작 <돈 좀 굴려봅시다>에서 이렇게 썼다.


“존 템플턴이나 워런 버핏 등 바텀업 투자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인이다. 미국 투자자들은 달러가 기축통화이므로 외환시장의 충격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만일 존 템플턴이나 워렌 버핏이 한국인이었다면 어땠을까? 2008년, 1997년, 1980년처럼 한국 경제에 큰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도 그렇게 뛰어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이 이 책 <환율의 미래>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철저히 한국형으로 쓰여 있다. ‘채찍 효과’라는 개념으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환율, 거시경제, 주가 등을 설명하는 부분은 압권이다. 선진국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우리나라 경제가 안타까울 정도이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의 투자 전문가이다. 저자는 위기 가운데 꽃피는 기회를 정확히 보고 있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투자자는 타고난 ‘행운아’라고 볼 수 있다. 채찍의 끝에 위치한 덕분에 늘 격심한 경기 변동에 시달리지만, 대신 자산 배분과 자산의 증식 측면에서는 큰 이점을 지니는 것이다.” – 234p


놀랍지 않은가? 이 책은 한국만이 갖고 있는 경제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반 ‘한국인’이 투자 관점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한국 사람, 곧 철저히 우리를 위한 책이다.


 


2) 환율과 거시경제의 기본을 세워준다


다음은 당신이 이 책을 읽게 되면 알게 되는 내용이다.



  • 환율의 기초지식
  • 환율제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 환율과 거시경제지표와의 상관관계
  • 외환시장의 구조
  • 외환위기와 불황의 이해
  • 한국경제의 독특한 상황
  • 달러, 유로화, 위안화, 엔화에 대한 이해
  • 기축통화의 독특한 특징
  • 경제통계 이용법
  • 환율을 기초로 한 투자법
  •  ……..

당연히 이 책을 읽으면 환율과 거시경제의 기초를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이런 기초지식이 책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논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고정환율제도라는 키워드 하나로 싱가포르, 중국의 최근 상황, 유로 재정위기, 국내 외환위기 가능성 등을 무슨 꼬치구이 만들 듯이 한 번에 꿰뚫는 저자의 내공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독자는 최근의 중국 상황, 유로 재정위기, 우리나라 외환위기 가능성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아주 자연스럽게, 고정환율제도와 변동환율제도의 차이점과 각 환율제도의 거대한 영향까지도 알 수 있다.


 


3) 놀랍도록 쉽고 간결한 설명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책 페이지를 다시 봤다. 255p? 좀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많은 내용이 들어 있는데 300p가 안 된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두 번째 읽으면서 내가 왜 이렇게 느꼈는지를 살펴봤다. 답은 간단했다. 설명이 군더더기 없이 간결했기 때문이다. 뭐랄까? 완벽한 이해에서 나오는 간결함의 미학이라고 해야 하나? 대가만이 보이는 담백한 손길이라고 해야 하나? 한국의 거시경제 특징, 외환위기 원인, 유로존 문제, 중국의 기축통화 가능성, 한국형 투자 방법 등 뭔가 거대해 보이는 주제를 간단하게 요리해 버린다. 물론 요리에는 빈틈을 찾기 힘들다.


게다가 이 책은 어렵지 않다. 마셜 맥루언은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는 상대의 언어를 사용한다.”라고 말했다. 환율, 거시경제 등에 대해 한동안 글을 썼던 입장에서 이걸 쉽게 설명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초보자도 충분히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였다. 저자가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대중과 소통했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다.


저자의 책과 글을 계속 봐왔던 입장에서 저자가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중서적은 콘텐츠 자체도 중요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 놀라운 연구가 들어 있으면 뭐하나? 책이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런 의미에서 ‘번역’의 중요성은 몇 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해외 명저가 번역 하나로 쓰레기 책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은 놀랍도록 간결하고 쉽다.


 


4) 잘못 알고 있는 경제 상식을 교정


환율과 경상수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상식적으로 원화의 가치가 적정 가치보다 저평가 되어있을 경우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고 반대로 원화의 가치가 고평가되었을 때는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저자는 2000년 이후에는 그 관계가 분명하지 않음을 논증한다.


국제유가가 하락할 때 한국 수출은 어떻게 될까? 언뜻 보기에는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선진국 소비자의 지출이 늘어나 한국 수출이 좋아질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현실은 정반대임을 드러내며 왜 그러한지를 설명해 준다.


환율이 상승하면 코스피 주가는 어떻게 될까?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므로 환율 상승으로 인해 수출 경쟁력이 개선되면 주가가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환율의 상승 국면에서 주가가 하락하는 일이 빈번하다. 저자는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가 교과서대로 혹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몇몇 경제학적 지식이 현실과 다름을 알려주며 더 나아가 그 이유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허튼소리 하는 경제기사를 찾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5) 진정한 전문가의 자세


책의 두 군데를 인용해 본다.


“물론 언제 어느 때 달러/원 환율이 추세적인 하락 흐름으로 돌아설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런 이야기 하고서도 전문가 행세를 하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이게 최선이 아닐까. 왜냐하면 환율의 장기적인 추세를 예측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어떤 요인으로 언제 그 추세가 바뀐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점쟁이’ 짓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전문가라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 179p


“난 젊은 날에는 고슴도치처럼 극단적인 전망을 곧잘 내놓았었지만 20년이 넘는 이코노미스트 생활을 통해 그런 전망이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금융시장은 무서운 정글이며 게임의 참가자들 모두가 ‘정말 그런지 결과로 검증해보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10년 이내에 한국에 외환위기가 온다는 고슴도치식 화법으로 쓰는 게 책 파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시장의 플레이어들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할 것이기에, 나는 그 길을 가지 않는 것뿐이다. 겁쟁이라도 해도 좋고 소심하다고 해도 좋다. 난 고슴도치보다 여우가 좋으며, 환율전망에 있어서도 이런 태도를 지켜나감으로써 결국 시장의 플레이어들에게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 182p


‘예측’의 영역에서 벗어나기 힘든 경제/투자 전문가들이 갖춰야 할 자세가 여기에 다 나와 있다. 만약 그 전문가가 경제와 금융 시장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언제 어떤 경제 변수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절대 단언할 수 없다. 복잡계인 경제와 금융시장을 인식론적 한계가 뚜렷한 인간이 절대로, 절대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전문가는 뉘앙스의 차이, 불확실성, 복잡성, 대치되는 의견 등에 민감한 ‘여우’가 될 수 밖에 없으며 예측을 단언하거나 극단적인 전망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런 경제 전문가는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편이다.


연 단위로 끊어서 미래가 어떻게 될것이라고 예언을 쏟아내는 ‘노스트라다무스의 후예’들은 반대로 대중의 선택을 받는다. 이들은 대담한 미래를 노래하거나 ‘빅 픽처’를 그린다. ‘외환위기’를 주요 가사로 활용하며 폭락은 자주 애용하는 물감이다. 사람들은 이런 고슴도치들에게 돈을 주며 칭찬하기에 바쁘다. 고슴도치의 가시에 피 흘리고 있는 자신을 보지 못한 채.


두 번째, 진정한 전문가는 겸손하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자주 보게 된다. 나는 홍춘욱 박사가 자신의 젊은 날에 ‘고슴도치’ 같았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 그냥 마음이 찡했다. 얼마나 자신을 부쉈을까? 얼마나 많은 고민과 내적 갈등이 있었을까? 저자의 20년에 대해 내가 아는 지식은 미천하지만 미스터 마켓 앞에서 20년 동안 사투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그리고 치열하게 단련시킨 한 전문가의 모습이 이 책에는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다른 경제/투자 책을 읽어보라. 서문부터 자신이 뭘 예측했고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부터 시작한다. 예측이 필요 없는 분야는 잘난 척을 좀 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진짜 잘난놈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경제 변수가 언제 어떻게 됐는지 내가 맞췄다는 식으로 시작하는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사이비’다.


다시 한 번 나도 고해성사를 한다. 나는 ‘고슴도치’였다. 뭘 몰랐다. 하지만 경제/금융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자 고슴도치가 하는 짓거리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경제 예측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예측’이 무용하기 때문이 아니다. 난 경제 분야에서 ‘여우’가 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정도까지 치열하게 파고들기에는 내 열정이 식었고 내 위치도 아니었다. 나는 내가 ‘여우’가 될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그쪽으로 매진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이 시장의 플레이어들에게만이 아니라 대중에게도 인정받았으면 한다. 이런 저자가 경제 도서분야에서 선대인, 최윤식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특히 경제분야에서 ‘거짓 지식’이 주는 해로움은 너무 큼으로.


경제와 투자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원문: 그녀생각’s 생각



한국 경제를 철저히 파헤친 명저